8000m 14좌
초오유 (8,201m)
'초오유'라는 산 이름은 산스크리트(Sanscrit)어의 복합어로서 '초'는 신성(神性)을 뜻하는 말이며 '오'는 여성을 뜻하는 어미(語尾)로, '초오'는 여신(女神)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오유'의 '유'는 터키옥(玉)을 의미한다. 즉 '초오유'는 '터키보석의 여신'또는 '청록여신이 거처하는 산'이라는 뜻의 『여신이 거처하는 곳』이란 이름을 가진 우아한 산이다.
지리적 위치는 북위 28도 06분 동경 86도 40분 네팔 히말라야 쿰부 산군과 서부 중국 티베트 자치구의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히말라야 고산들이 그러하듯이 남면, 즉 네팔 쪽은 상당한 급경사에 장장 2Km에 달하는 넓고 긴 벽을 형성하고 있으며 북면은 비교적 완사면으로 형성되었다.쿰부히말의 고봉들 중에서 가장 먼저 인간에게 정상을 허락한 산은 에베레스트였다. 그래서 초오유도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1954년 오스트리아 원정대에 의하여 최초로 등정 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8000m 등반대는 한 국가의 산악계가 총력을 기울여 원정을 준비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오스트리아의 초오유 원정대는 헬베르트 티히(Herbert Tichy)라는 한 개인에 의해 꾸려진 아주 검소한 경 등반대였으며, 히말라야 등반사상 최초로 포스트 몬순(Post Monsoon) 등반을 기록한다.이제까지의 히말라야 원정대가 엄청난 물자와 많은 인원, 초현대적인 장비로 등반을 꾸려 왔으나 이 원정대는 등반용 산소조차도 준비하지 않은 채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겠다는 의도로 원정을 준비한 검소한 등반대였다. 이 팀의 티히 대장은 “히말라야에서는 주어진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겠다는 자세만 지니고 있으면 초현대적인 장비나 엄청난 물량이 필요치 않다. 다만 지니고 있는 장비의 효율성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등반의 접근, 비용 문제 때문에 Nanpa La를 넘어 티벳영토에서 등반이 많이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코다리-장무의 국경을 넘어 티벳으로 접근하여 북서릉으로 등반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북면 티벳쪽 등반의 곤란한 점은 10월 초부터 다음해 2월말까지 계속되는 강한 타클라마칸 사막의 북서풍과 7,500m와 7,800m대에 형성되어 있는 두 개의 커다란 록밴드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9월 20일 울산·서울 합동 원정대의 남선우, 김영태 셀파 2명에 의해 국내 초 등정 되었다.
2011년 9월 23일 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