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대륙 최고봉
엘부르즈 - 유럽
그루지아공화국의 코카서스산맥에 서봉(5642m)과 동봉(5,621m)등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1874년 영국 탐험대의 플로렌스 크로포드 그로브에 의해 초등되었다.
스키등반이 가능하며 매력이 있다.
김홍빈 1997년 7월 30일 등정(스키 등반)
[엘브루즈 등반 일지]
1997년 7월 25일
06시 30분 정득채 후배와 MBC기자들과 함께 공항으로 출발 공항에 도착하니 영학이형, 조카 정수와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고, 출국 수속을 마치고 나니 은철이도 도착을 하여 배웅 나온 사람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광주공항을 출발 김포공항 국내선에서 산악스키, 카고 백, 배낭을 찾아서 만남의장소인 국제선 1청사 외환은행 앞에 도착했는데 아직 아무도 보이질 않고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울산 김석만씨, 속초 김회열씨, 남선우선배님, 김만극씨, 대행회사인 국제캠프 배승렬형님 그리고 서울에서 배웅 나온 송원대학 유영범, 조포현, 윤희관형님들과 차 한 잔씩 마시고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9시간 비행 끝에 세레모티에보 공항에 도착 세관용지에 달러($) 소지 액을 정확히 기입하지 않으면 출국시 문제의 소지가 된다고 한다. 그럴만한 돈도 없는데 겁을 준다. 짐을 찾아서 나오니 가이드 “바딤”이 기다리고 짐을 찾아서 다른 가이드 세르게이에게 부탁하고
다른 볼일이 있다고 가고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1980년에 올림픽이 열렸던 선수촌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니 커피 찌꺼기를 거르지 않아 설탕을 많이 넣어도 먹을 수 없고, 전화시설이나 영어를 하는 직원이 별로 없다. 백야현상으로 새벽2시까지 대낮처럼 밝아서 술 한 잔씩 하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해본다. 1$=5750루블 =910원, 1원=6.3루블 시차는 서울이 5시간 빠르다
7월 26일
아침 일찍 숙소근처 호숫가, 지하철 역, 벼룩시장, 등 주변을 산책하고 08시 조식 후 모스크바 남서부의 부느코보 공항에 도착하여 모든 짐을 20Kg 재확인하여 체크를 해야 한다. 짐이 오버가 되면 핸드 캐리어도 짐도 봐 주지 않고 차지를 내야한다. 12시 50분 모스크바 공항출발 14시40분 미네랄버디에 도착하니 가이드“불라드 미르”와 운전기사가 기다리고 서로 자기 손님이라 우긴다. 국내선 공항은 화장실을 찾기가 힘들고 사용료도 한화 500원 정도 내야한다.
15시 20분 미니버스로 공항출발. 끝이 보이지 않는 해바라기 밭 ,밀 밭 ,목장, 광활한 평야를 지나 산들이 점점 높아지고 협곡이 생기고 급커브 길을지나 18시 40분 2,300m의 “로고보” 롯지(민박집)에 도착했다. 빵과 버터 밥에 우유를 넣어서 음식이 나오는데 적응이 안돼서인지 음식 탓인지 식사를 허는 둥 마는 둥 했다. 평균기압=630mb
7월 27일
오늘은 고소적응 차 체켓봉(3,700m)을 등반하는 날이다.
숙소에서 2km 정도 걸어 내려와 스키장 리프트를 타고 오르는 길에 이쁜 들꽃들이 너무 많이 너부러져 있고 자갈밭과 눈길을 올라 고도를 높여감에 따라 서서히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하더니 3,400m 쯤 오르니 조금 더 강도가 심하게 머리가 지끈 지끈 아파온다. 바로 건너편에 엘부르즈가 보이고 등반할 루트까지 잘 보인다. 입맛은 없지만 등반을 위해서 억지로 간편한 빵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하산해서 오는 길에 길가에서 파는 양고기 꼬챙이 구이를 하나씩 먹고 숙소에 도착 했는데, 머리가 아파 결국 참지 못하고 아스피린 2알 먹고 잠을 청해 본다. 매킨리 등반 중 뇌부종, 폐부종의 후유증으로 더 심한 것 같다. 내가 고산 등반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죽을 확률이 50%가 더 높다고 했었다 하지만 극복을 해야 만이 계획한 등반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7월 28일
하루 더 고소 적응을 하기로 하고 10시 50분 곤돌라를 타고 3,000m도착 다시 리프트를 갈아타고 3,500m에 도착하여. 스노모빌을 타고 퓨리유트 대피소(4,200m)에 도착 걸어가면 3시간 정도가 소요될 것 같다. 스키로 파트코브 락 4800m까지 고소적응 후 스키로 3000m까지 하산. 눈이 많이 녹아 질퍽거린 대다 산악스키부츠가 아닌 등산화를 신은채로 폴도 없이 스키를 타니 장딴지까지 빠지는 눈과 발목을 잡아주지 못하는 부츠 때문에 하산은 빠르나 무척이나 힘이 더 든다. 롯지 도착. 곤돌라, 스노모빌, 리프트를 이용하면 안 되지만 일정이 빠듯하니 이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
7월 29일
퓨리유트 대피소(4,200m)에 도착 어제부터 화이트아웃이 생기며 날씨가 좋지 않다.
오늘은 운행을 못하게 되어서 대피소에서 푹 쉬고 내일은 일정 때문에 운행을 해야만 한다. 대피소 위 둥글게 생긴 붉은색을 띤 암벽에 그동안 엘브루즈를 오르다 사망한 산악인들을 기리기 위한 동판들이 화이트아욱과 강풍 등 날씨의 급변화를 말해주듯 많이 박혀있다.
잠은 오지 않고 머리만 지끈거리며 아프고 긴장이 되어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른 원정 때는 컨디션이 좋았는데 아마도 매킨리의 사고 후유증이 아닌가 싶다. 이곳에서는 사실 겨울용 침낭은 필요 없고 단지 침낭커버나 여름용이면 된다. 대피소에서 제공하는 침대만 사용해도 춥지 않지만 특유의 냄새 때문에 고려해봐야 될 것 같다.
가스버너와, 가스를 가져오면 2층에서 취사를 하고 석유, 휘발유버너는 1층에서 취사를 할 수 있지만 지역여건상 고소라 취사로 인한 각종냄새로 역겹게 느껴질 수 있고 개인에 따라 컨디션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 물론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역겨운 냄새는 싫다.
7월 30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03시 기상. 차 한 잔과 머리가 아파서 입맛은 없지만 등반을 위해서 누룽지를 억지로 먹고 새벽 4시경 출발하여 파트코브 락에 도착하니 바람이 점점 더 거세게 눈가루까지 날리며 구름이 아주 짖게 끼어서 2~3m 앞을 불수도 없고 강풍으로 체감온도가 뚝 떨어져 극도로 춥다. 또 다시 동상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날씨가 호전되기를 기다려보지만 좋아질 기미가 안보여 출발해서 얼마를 걸었는지 시간을 보고 싶지만 손이 노출될까 봐 장갑을 벗어서 시계를 볼 염두가 안 나고 가이드는 날씨가 안 좋으니 내려가자고 한다.
쉬면 힘들고, 머리가 아파서 앞장서서 걸어가자면 뒤에 오던 가이드는 “you no guide!!” 하면서 고함을 지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가이드는 등반을 하지 않으려는 속셈이었다. 내 페이스대로 계속 가니 5,200m 지점에 바람에 뼈대마저 없는 흔적만 남은 앙상한 대피소의 흔적이 보인다. 너무 지치고 춥고 여기서라도 쉬어야 될 것 같은데 무심한 가이드는 가버린다.
초콜릿을 먹으려고 하니 도통 얼어서 바위처럼 단단해서 먹을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지치고 굶주린 내 뱃속을 물 한 모금으로 달래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바람 때문에 쉬지도 못한 채 배낭을 앞가슴에 메고 팔짱을 끼어 나름대로 손을 보호하며 70m쯤 더 오르니 고마운 햇볕이 반기고 그 거센 바람도 불지 않는다.
여기서 쉬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5분 정도 쉬고 출발하니 눈이 푹푹 빠지면서 경사가 점점 가파르고 얼음과 눈이 믹스된 딱딱한 70도정도의 경사가 기다린다.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오르니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다시 힘을 내어 올라본다. 정상은 아직 1Km정도 남았다. 바람이 너무 거세서 발로만 버티면서 휘청거리는 몸을 지탱하며 걸어가기는 무척 힘들고 어렵다.
야속한 화이트 아웃까지 앞을 분간하기가 어렵다. 구름이 걷힐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능선을 따라 계속 걷다보니 정상이 바로 앞에 보이고 젖 먹던 힘을 다해 정상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는다. 이 순간만큼은 이 순간만큼은 내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 동안의 힘겹던 순간을 대내이며 다시 한 번 숨을 가다듬고 드디어 정상 이정표인 바위를 오전 10시30분경 술래잡기하듯 터치하고는 정상 바로 밑에서 바람을 피하면서 쉬고 있으니 다들 올라온다. 그동안의 힘겨웠던 숱한 순간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사진 촬영을 하고 하산하니 발걸음이 가볍다. 일행을 기다리며 등반 중 눈여겨봤던 귀곡 산장 같은 대피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뒤에 내려오는 사람들을 기다린다. 이곳은 산의 높이에 비해 강한 바람과 잦은 화이트 아웃으로 산악인들의 사망사고가 많은 곳이라 한다. 나 또한 컨디션이 좋지 않고 춥고 지치며 저체온으로 인해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게 느껴온다. 파트코브 락까지 걸어가는 내내 몸과 마음이 따로 지배하고 쉴 때마다 순간순간 잠이 몰려온다. 파트코브 락 밑에 도착하여 데포 시킨 스키로 하산을 시도한다. 산장까지 하산하니 15시경 산장에 도착. 오늘의 일과가 끝난 것이다. 머리가 아프고, 춥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증에 빠진다.
남 선우 선배님이 저녁을 지어왔지만 메스꺼운 배속 때문에 먹지도 못하고 그저 죄송할 뿐이다
7월 31일
머리가 아직도 무엇에 맞은 듯 멍 하니 아프다. 3,000m까지 스키로 혼자 하산하고 4명은 스노모빌 타고 하산한다. 리프트를 타고 “로고보” 롯지에 도착하니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냄새도 안 나고 무척 좋다.
"고통의 순간이 몇 칠이 지나니 다 지나간다."
8월 01일
로고보 롯지에서 미니버스를 이용하여 공항으로 출발을 할여니 그동안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고 생각조차 하기 실은 힘든 과정이 싹 사라지며 다음 계획인 킬리만자로 원정을 떠올려 본다. 그래서인지 시원섭섭하다. 오는 내내 창밖의 경치가 더없이 멋있어 보인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해바라기 천국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해바라기 농장을 보고 있으려니 내가 앞으로 더 도전해야할 꿈들이 하나하나 펼쳐진다. 나의 꿈들도 저 해바라기처럼 어떤 시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희망을 향해 피어나리라 믿는다. 적어도 나 김홍빈의 해바라기는 그렇게 강하게 피어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리라. 민버디 공항에 도착 후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8월 02일
입맛이 없어서 아침을 거르고 10시30분경 등산 장비 점에 들여 아이 쇼핑을 하고, 활력 넘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제대로 분수 있는 곳인 아르바트 거리, 해발고도 220m 레닌 언덕은 모스크바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크레믈린 광장, 레닌의 시신을 보관하는 박물관 등을 둘러보고 한국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마친 뒤 모스크바 국제공항에 4시간 전에 여유 있게 도착했지만 출국심사를 하진 않아 탑승시간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지루하다. 여행을 통해 참고 기다리는 인내도 필요하고 익숙해 저야 한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탑승 2시간 전에야 통관을 해서 21시 18분 모스크바를 출발한다. 출국할 때 김포공항에서 같이 탑승했던 한국 관광객들이 간간히 보이니 새삼 반갑다.
8월 03일
한국시간 11시15분.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하였지만 비가 와서 국내선이 30분 지연 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이 소리도 반갑다. 오늘 중으로 광주 집에만 가면 되니까 그리 걱정은 되지 않고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14시 30분 광주공항에 도착하니 아내가 마중을 나와서 기다리며 손을 흔든다. 며칠 안 되지만 힘들어서 얼마나 오고 싶었던 집인가. 예전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보다는 산에만 가면 마음이 편하곤 했는데 가정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
이번 등반은 일정에 맞추어 등반을 하다 보니 체력에 무리가 따랐고 고소적응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다. 경비나 여건만 되면 15-20일 정도의 여유 있는 일정으로 등반을 했다면 더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등반은 내 인생의 크나큰 변환점이 되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 경험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이며 내 제2의 인생과 꿈을 가져다준 씨앗이 될 것이다
열손가락을 잃고 한 때나마 어리석은 생각과 좌절로 주저앉을 수 도 있었지만, 나를 믿고 응원해준 아내와 소중한 한분 한분의 응원으로 첫 성공의 시작점이 되었고 앞으로 김홍빈의 도전의 꿈은 계속 펼쳐질 것이다. 이번 등정은 출발은 혼자 이었지만 등반을 함께 해준 분들이 있었기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내겐 큰 경험과 큰 행운이었다.
도움을 준 “사람과산의 남선우선배님, 울산산악회 김 석만씨, 속초 김회열씨, 삼공제약 김만극씨
저를 믿고 후원해준 금광기업 고경주사장님, 그리고 등반을 가이드해준 국제캠프 배승렬사장님, 광주시립장애인종합복지관 임성욱관장님, 광주시장애인재활협회 전진한회장님, 뉴스킨 김일영, 박정식 사장님, 송원대학 윤호근, 유영범형님 그리고 물심양면 응원해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