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대륙 최고봉
아콩카과 - 남미
아르헨티나 멘도사(Mendoza) 라스 헤라스(Las Heras) 지역의 안데스산맥에 있다.
초등은 1897년 1월 스위스의 마티아스 주브리겐(Mattias Zurbriggen)에 의해 이뤄졌다.
한국은 1981년 1월 18일 공응대, 최중기대원이 등정하였다.
[김홍빈 1998년 1월 16일 등정]
1997 년 12월 22일
IMF 때문에 같이 등반을 준비한 사람들이 다 못 간다고 12시경에 시철이형, 서기석씨 전화를 받고 앞이 캄캄하여 한참을 생각하다. 오후부터 혼자라도 가려고 비자 수속준비를 하는데 단체가 아니라서 여러 가지 서류가 더 많아진다. 다행이 광주항공 제갈호일선배님과, 사모님이 번역을 하고 공증을 받기 위해 법무사 사무실에 퇴근을 못하게 전화 연락을 해서 공증을 받은 후 비자서류와 계획서를 찾아 내일 12시 전에 꼭 신청을 해야 한다.
23일은 대사관이 오전 근무만 하고 24일, 25일은 휴일이므로 새벽차로 출발하여 기석씨를 만나 비자신청서를 접수하니 26일에야 비자 승인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환율이 비자를 접수하고 나니까 1$=2,000원까지 상승했다.
12 월 26일
다행이 비자서류 O. K
12월 28일
시각 장애인 장영철씨 그리고 김덕심누님이 저녁식사를 초대해서 맛있게 먹고 집에 오니 은철이가 맛있는 소고기를 사왔다며 후배들이랑 소고기 파티를 하고 득채와 동식이가 짐 패킹을 다 해주고 돌아간다.
12 월 30일
11 시 30분 박정식 김영학 정찬득 정득채 김주형 홍동식 유순옥 등 배웅을 받으며 현숙씨와 우암산악회 광현씨랑 서울로 출발
국제선 1청사에서 기석씨를 만나 여권(비자)과 항공권을 받고 출국 수속을 마치고 18시 40분 광현씨와 현숙씨 배웅을 받으며 출발 헤어지기가 싫다. 이제부터는 오직 나 혼자 밖에 없다.
그 동안 급하게 비자발급 등 준비하느라 피곤했는지 기내에서 30분 정도 자고나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10시간 50분 지루한 비행 후 30일 12시 30분 L. A공항에 도착 했다.
다시 상파울로행 비행기를 타기위해 분주하게 수속을 마치고 14시 25분 출발
12 월 31일
12시간의 비행 후 08시 10분 브라질 상파울로에 도착 했다.
또 다시 국내선 비행기로 10시 30분 상파울로 출발 2시간 후 12시 20분 서울에서 출발한지 30시간만에 부에노스 아이레스 도착하였다.(시차는 12시간 한국이 빨리 간다.)
짐을 찾아 세관을 통과하고 밖으로 나오니 중앙대 산악부 67학번
박 성호선배님과 아들 창식이가 피켓을 들고 서 있다. 국내에서 연락이 되어 부에노스 아이레스 공항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알펜투어와 충북연맹 팀을 태운 바링 항공이 일본에서 지연되어 하루 늦게 도착한다고 멘도사에 사는 김국진씨한테 연락을 받고 공항에 나왔다고 한다. 박선배님 가게에 도착하니 사모님과 진숙(딸)이 그리고 일하는 아르헨티나 아가씨가 반겨준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12월 31일이라 오후에는 가게 문을 닫고 시내 몇 군데를 거쳐서 선배님 집에서 잠을 자는데, 깨워서 비몽사몽간에 저녁을 먹고 시내구경 겸 중앙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계속 졸리고 …….기도하는 시간만 되면 제일 좋다. 사모님이 지도를 보며 아르헨티나를 설명해 주고 진숙이 창식이는 망년회를 한다고 다음날 아침에야 집에 들어온다.
1998년 1월 1일
오늘 공항에 알펜투어 강 철원씨와 충북연맹팀을 마중가기위해 아침 일찍부터 사모님은 16명이 먹을 김밥을 열심히 준비 하시고, 집 밖에서는 어제 저녁부터 신년을 맞아 아침까지 폭죽을 쏘아 올린다.
한국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14시 30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출발 가도 가도 그 자리 같은 평지를 밤새도록 지나갔다.
1 월 2일
아침 7시 30분 멘도사에 도착하여 아침을 먹고 09시 40분 멘도사 출발 4시간정도 차를 타고 페니텐테(Penitentes ) 2,550m 다비드에 13 시 30분 도착하여 카라반 짐을 뮤라(말)로 운반할 짐을 분리하여 패킹을 하고 휴식을 취함. 스키장내에 있는 숙소여서인지 시설은 아주 좋다. 기분도 최고다. 성수기와 비수기는 입산료가 다르다.
1월 3일
11시 30분경 관리사무소(2,800m)에 입산 신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출발하니 푸른 초원위에 호수가 있고 저 멀리에는 눈 덮인 하얀 산이 손에 잡힐 것 같이 가깝게 보이고 3시간 정도 가니 남벽과 북벽 루트가 갈라지는 다리를 건너 콘플루엔시아(Confluencia 3,250m)에서 조금 더 올라 3,500m지점에 깨끗한 물이 있어 2시 30분경 점심을 먹고 나서 야영준비를 함. 컨디션이 약간 안 좋아진다. 올 것이 오고 있다.
1 월 4일
어제 점심을 라면으로 먹고 저녁을 먹지 못하고 또 이른 아침을 라면으로 떼우고 출발부터 빙하물이 불어서 계곡을 건너고 돌로 다리를 놓고 이러기를 여러 번 점심은 간식으로 먹고 얼마를 가니 계곡이 끝나고 오르막이 나온다. 한국 사람을 만났는데 이틀 전 일행 중 동료가 실족되어 혼자서 내려오는데 앞으로 4시간정도 올라가면 플라자 데 뮬라스 4,300m B.C에 도착한다고 한다. 얼마를 더 가니 다 허물어진 대피소가 보이고 지그재그 급경사 길이 나타나고 여러 개의 작은 자갈 언덕을 넘어 19시경 B. C에 도착하니 고소증세는 없고 컨디션은 아주 좋다. 텐트를 치고 저녁때부터 머리가 약간 아프다.
1 월 5일
오늘은 예비일이라 아침을 늦게 먹고 나서 각 캠프를 정리하고, 장비를 손질하고 휴식을 취함.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1 월 6일
컨디션이 좋지 않고 왼쪽 가슴이 꾹꾹 쑤시고 꼬르륵 소리가 나서 하루 더 쉬기로 하고 B. C에 있는 의무실 에서 진찰결과 조금 더 지켜보고 머리 통증은 참는 데까지 참아보기로 했다.
충북연맹 알펜투어 C1(5,200m) 건설
1 월 7일
오늘도 머리가 약간 아파서 아스피린 한 알을 먹고 의무실에 가서 진찰을 받으니 가슴은 이상이 없다고 하고 아스피린만 준다.
충북연맹 알펜투어 C1 진출
1 월 8일
아직도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고 머리가 약간 아프다.
아침을 억지로 먹고 11시 30분 부식을 가지고 C1으로 출발 경사가 심하고 자갈길에 지그재그가 처음부터 끝가지다. 중간만큼 가니까 머리가 쪼게 질것 같이 아파서 아스피린 한 알 먹고 17시 40분 C1(5,200m)에 도착 부식만 텐트 안에 던져 놓고 B. C로 하산하는데 자갈과 모래가 많이 쌓여서 눈길처럼 내려오니 쉽게 내려와 진다. 20시경 도착 다리에 힘이 없다. (등반 6시간, 하산 2시간 소요) 충북연맹 알펜투어 C2(5,850m) 건설
1 월 9일
C1 진출하는데 으레 머리가 아프고 밥맛이 없다. 깐포도 캔 하나 먹고 차를 마시고 놀다가 10시경 취침
눈이 오고 날씨 안 좋음.
1 월 10일
C2(5,850m) 진출 장장 5시간에 걸쳐 입성
지그재그 길은 여전하다 조그마한 산장(2∼3인용) 2채와 텐트 4동 그리고 조금위에 텐트 몇 동이 보인다.
충북팀은 짐 수송 후 차 한잔씩 마시고 하산, 혼자 C2에 남아 하루 밤을 보내고 컨디션이 좋은면 정상을 가야 하는데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잠을 청하지만, 머리만 아프고 잠은 안 오고 바람은 왜 이리도 세게 부는지 장마철 계곡 물 소리처럼 텐트를 날려 버릴 것 같고 밖에는 나가기도 힘든데 소변은 왜이리? 자주 마려운지 깡통신세를 지고 날이 밝으면 하산키로 함
1 월 11일
침낭 속에서 꿈틀거리다가 시계를 보니 8시다. 바람은 잔잔하고 온도는 햇볕이 들어오니 -8도 침낭속의 물은 얼지 않고, 텐트 안의 물은 간밤에 얼어서 먹을 수가 없다.
10시경 하산하기로 하고 하나씩 하나씩 준비를 하고 마지막 이중화 신발 끈이 남았는데 마침 외국팀 등반 부부가 올라와서 손을 보여주고 사정 이야기를 하니 쾌히 신발 끈을 묶어주고 장갑도 끼워준다.
오늘은 하산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C2→C1→B. C (1시간 40분소요)
B. C에 거의 다 와서 손을 흔드는데 보고도 전혀 반응이 없고 내가 하산하는 길로 사람들이 올라오기에 마중 나온 줄 알았는데, 상행 카라반 도중에 올라오면서 실족사 했다고 들은“故 강 준호”씨 시신을 어제 저녁 7시경 아콩가구아 구조대원들이 운반해서 마지막 제를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운구를 수송하려고 시신을 싸기 직전 도착해서 제를 올릴 수 있었는데, 왜 C1도 거치지 않고 빨리 내려오고 싶어 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시신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열심히 등반을 하는 것이 고인(故人)이 원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다시 한 번 다짐을 한다.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올 수 있는 일이고, 나는 여러 번 경험을 했다.
(알펜투어팀 B. C 철수 후 하산)
1 월 12일
B. C 에서 아콩카구아의 정상 등정을 꿈꾸며 휴식을 취함
1월 13일
충북팀 덕분에 식사량도 많아지고 이제 정상적인 컨디션이 돌아왔다 C1 진출(3시간 50분소요)
1월 14일
C1 대기 날씨는 바람이 많이 불고 정상부위에 구름이 많다.
1월 15일
C2 진출 (3시간 소요) 날씨는 바람도 없고 아주 좋다.
충북연맹 1차 정상 등정 조 3명 15시경 정상등정
1 월 16일
04시경 기상 바람은 약간 불고 아직은 캄캄하다.
햇반, 옥수수캔, 차로 아침을 먹고 05시 30분 헤드랜턴을 켜고 출발
자갈길의 급경사를 오르기 2시간 인디펜덴시아(Independencia 6,250m)대피소가 나오고 200m의 경사를 오르니 C1(5,220m)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옆으로 걸어가야 할 정도의 세찬바람이 불어대고 햇볕이 들지 않아 손목부위 절단 수술로 인해 혈액순환이 잘 안 돼 동상이 걸릴 것 같아 팔짱을 끼고 걷다가 힘들면 다시 펴고 이러기를 수십 번, 급경사로 인해 발을 디디면 미끄러지고 10발 걷고 숨을 몰아쉬기를 계속하면서 오르니 새벽 03시에 출발한 등반 팀들을 다 추월하고, 2명이 정상인 듯 한 곳에서 내려다본다.
저기가 정상이면 500m정도 남았다. 충북연맹 김 영식대장이 정상을 양보한다. 앞서가는 한 사람을 추월하고 4번을 쉬고 올라서니 넓은 바위위에 십자가가 보인다.
나는 정상 밑에서 기다렸다가 김대장과 같이 손을 잡고 12시 17분경 정상에 올라 기념 촬영을 하고 박 원래, 이 대호대원을 1시간 정도 기다리는데 너무 춥고 찬바람이 고글사이로 들어와서 앞이 흐릿흐릿 높낮이와 먼 거리가 분간이 잘 안 된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겠지 생각 했는데 돌에 걸려 넘어질 뻔하고 급경사를 엉금엉금 손을 짚고 기다시피 하여 내려오니 배는 고픈데 장갑을 벗으면 혼자서 다시 끼울 수 없으니 배낭 속에 먹을 것이 있어도 먹지 못하고 3시간에 걸쳐 C2에 하산, 자갈길, 경사도, 바람 등 먼지는 빼놓을 수 없는 아콩카구아의 특징이다.
3시간 정도 후에 세 대원이 내려온다.
1월 17일
아침을 대충 먹고 C2→C1→B. C 하산
B. C 는 또 하나의 천국이다.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을 던져버렸다.
건조한 공기 급경사의 모래인지대 아콩카구아의 지겨움을 잊기 위해 매일 매킨리 등반을 그리면서 등반을 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픈 고산을 왜 그리도 그리워하는지 이번 등반에도 고소와 얼마나 싸웠는지 모른다.
내일은 충북연맹 3차 정상공격 날인데 날씨는 아주 좋다.
1 월 18일
새벽 05시부터 C1, C2 와 교신을 하는데 구름도 없고, 바람은 산들바람이고, 대원들 컨디션도 좋다고 한다.
06시 30분 교신부터는 날씨가 급변하고 있다고 등정 조에서 무전이 날아온다.
바람이 사람을 날릴 기세고 C1, B. C에서 본 정상은 백풍이 불고 점점 커진다.
C2에 고소식량이 떨어지고 대장의 무전이 바람을 탄다, “정상 등정 조 C2로 하산하라”
각 캠프 철수 아침을 먹는 B. C 대원들 갑자기 나부터 눈물이 눈에 비치고 밥공기가 반씩 남아 압력솥으로 간다.
등반 일정과 항공기 예약이 국내에서부터 잘 못되어 1월 18일 날 귀국해야 되지만 등반이 늦어져 귀국 날짜가 지나 버려 11시 30분 B. C 하산, 17시 입산 신고서에 도착하니 트래킹회사 직원이 차를 가지고와서 호텔에 도착 먼저 샤워를 하고 취침 10시경 일어나서 저녁을 먹고 김국진,박 성호선배님께 전화를 하니 안부를 묻는다. 항공권은 처음에는 2월 달에나 있다고 한 것을 부에노스아이레스 박성호선배님이 어렵게 1월 25일로 예약을 해 놓았다 고한다.
이번 원정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려고 30분 동안 전화통과 씨름을 했는데 국제통화는 안돼서 못하고 서운한 마음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와 정리를 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꿈속에서라도 만나고자 잠을 청한다.
1 월 19일
휴가철이라서 노선버스가 만원이라 간이 정류장에 정차를 하지 않아 Penitentes(2,550m) 다비드 호텔에서 푸엔델잉카 마을 위 터널 버스정류장으로 이동 멘도사행 버스를 타고 갔다.
김국진씨가 터미널로 마중 나와 집에서 신세를 지고 캠프장 답사 후 충북팀과 울산팀을 기다리는데 B. C에서 짐이 늦게 내려와서 다음날 새벽에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잠도 안자고 기다림.
1 월 21일∼23일
경비를 절약하기위해 충북팀, 울산팀과 함께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 근처의 캠프장으로 이동 텐트1동에 날짜와 상관없음 턴트는 1동당 10$이고, 사람은 하루에 3$을 받는다.
1 월 24일
부에노스 아이레스 백구번 교민촌 한일관 숙소 25$ 비싸고, 창문도 없고 시설이 너무 안 좋다.
충북팀 귀국
1월 25일
부에노스 아이레스 귀국
1월 26일
상파울로 , L.A
1월 27일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찬수가 나와 있다.
구정 전날이고 예약을 하지 않아 걱정을 했는데 집에 전화하니 17시 비행기를 예약 해서 18시에 광주공항에 도착, 광현씨부부가 기다린다.
국내에서는 아콩카구아의 산이 너무 쉽게 알려져 반바지를 입고도 정상을 간다는, 그래서 너무 쉽게들 생각하고 준비를 한다. 7,000m의 고도를 무시하고, 기간은 25일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리고 C2 이상은 우모복을 입고도 20∼30도의 체감온도를 느꼈고, 우모복. 스키고글을 준비하지 않아 우모복은 충북팀에서 빌려 입고 스키고글이 없어서 정상 등정 후 하산하면서 힘들었다.
아콩카구아는 눈이 없고 너무 건조하기 때문에 목이 따금따금하고 고소적응도 잘 안되며 특히 나 같은 경우는 매킨리등반 사고 후 뇌수종 폐수종을 앓은 후로는 2-3개월 간격으로 고산등반을 해도 적응이 잘 안 되는 편이며 3000m이상만 가면 천천히 걷고 고소와 싸우기 시작해야한다.
가장 힘든 상황은 물을 많이 먹는데 C2이상 에서는 용변을 볼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가장 미안하고…….
손을 너무 무리하게 사용한 탓에 이틀간은 손목이 아파서 잠을 설칠 정도였다.
등반보다 더 어려운 사소한 일들이 나에게는 너무 많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준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도움 부탁드립니다.
이번 등반에 도움을 주신 다나산업 우석훈사장님, 써미트 장재순 사장님, 우모장갑과 오버미튼을 직접 손 에 맞게 제작해준 에코로바 조병근사장님, 전진한 광주광역시장애인재활협회장님, 임성욱 광주광역시장애인종합복지관장님 그리고 IMF로 인하여 후원을 받지 못해 어려울 때 물심양면으로 격려와 후원을 아끼지 않으시고 도와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등반에 많은 도움을 준 알펜투어 강철원후배와 충북연맹 김영식 대장과 대원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