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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슨 매시프


 


 

빈슨 매시프 - 남극


한반도 넓이의 61배나 되는 남극 대륙은 표면의 98%가 얼음으로 덮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산군을 가지고 있다. 산군(Mountains)과 만년빙으로 펼쳐진 플래토(Ice Plateus), 붕빙(Ice Shelf)들이 마치 위성도시처럼 펼쳐져 있다. 이 가운데 남극 횡단산맥 (Transatlantic Mountains)은 동남극과 서남극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횡단산맥을 제외한 대부분의 산들은 대륙의 해안선을 따라 거대한 쇠사슬처럼 길게 연결되어 있다. 18개의 4,000m급산과 6개의 3,000m급산이 있다. 

빈슨 매시프(Vinson Massif·4,897m)는 남극 대륙의 서쪽 엘스워드(Ellsworth) 산군의 센티널(Sentinel) 산맥에 속해 있는 남극 최고봉이다. 센티널 산맥은 1935년 미국의 백만장자 탐험가였던 링컨 엘스워드(Lincoln Ellsworth)에 의해 처음 발견됐고 너비 90km, 길이는 355km에 이른다. 최고봉인 빈슨 매시프는 1935∼1961년 남극 조사 및 탐험의 강력한 후원자였고, 당시 미국 군사위원회 의장이었던 칼 빈슨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연봉’이라는 의미의 매시프는 정상이 3개의 봉우리로 이뤄졌다 하여 붙여졌다. 

1966년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후원 아래 내셔널 지오그래픽사와 아메리칸 알파인 클럽 합동등반대가 처음 정상에 올랐다. 우리나라는 1985년 11월 29일 한국해양소년단연맹이 파견한 한국남극관측탐험대(대장 홍석하)의 허욱, 허정식, 이찬영 대원이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등정에 성공했다. 

등반의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가장 추운 대륙에 있는 만큼 다른 지역과 다른 몇 가지 장애물을 넘어서야 한다. 블리자드(blizzard·폭풍설 또는 강한 눈보라)와 연 평균 영하 50도에 달하는 낮은 기온이 그 것이다. 하루 20시간이 넘는 백야 현상은 등반 팀의 휴식을 방해한다. 



김홍빈 2009년 1월 2일 등정(스키 등반) 


“나의 등정이 아닌 우리 모두의 등정” 

남극대륙 최고봉인 빈슨매시프(4,897m)는 남극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무엇보다 경비 마련이 부담되는 곳이다. 남극탐험에 관련된 모든 일을 대행하는 ANI에 돈을 미리 지불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지켜야 할 까다로운 의무조항이 많았다. 예를 들면, 가이드를 반드시 동행해야 하고 자연보호에 관한 규정이 많다. 또한 서로 줄을 묶고 등반해야 하는 등 지나친 안전규정 때문에 오히려 등반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남극으로 가는 길은 1년에 다섯 번 정도 러시아제 군수송기를 개조한 일루션(수송기)을 띄우기 때문에 예약을 미리 해야 한다. 또한 빈슨매시프 입산 경비도 90일 전에 완불해야 한다. 나의 경우 대금을 빨리 치르지 못해 이자까지 보태야 했다. 



칠레 최남단 푼타아레나스에서 남극대륙의 관문인 패트리어트힐(820m)까지는 비행시간 5시간 거리지만 기상악화로 2주의 시간이 걸렸는데, 운이 나쁘면 한 달을 꼬박 지체해야 한다. 푼타아레나스와 패트리어트힐을 왕복하는 일루션 수송기. 40~50명이 탑승 가능하다. 일루션은 빙판에 착륙하는 비행기라 착륙 바퀴 대신 스키가 달려 있다. 남극은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이륙과 착륙시 바람과 가스,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때문에 가장 비싼 항공료를 내는 반면 최악의 서비스를 받지만, 남극을 찾는 사람들은 패트리어트힐에 무사하게 도착만 해도 감격이다. 

패트리어트힐에는 등반 외에도 펭귄 투어와 운석탐사, 산악스키를 타러온 사람, 극점에 가는 사람으로 붐볐다. 더 이상 남극은 가볼 수 없는 미지의 땅이 아니라 경비만 내면 경비행기로 남극점까지 구경이 가능한 곳이다. 남극대륙은 24시간 백야현상이 나타나는 신비한 곳이다. 그곳은 밤이 없기 때문에 낮에 일을 미루다 보면 게을러지기 딱 좋은 곳이다. 


 다시 투윈오터(눈에 착륙하는 경비행기)를 타고 40~50분에 걸쳐 빈슨매시프 베이스캠프(2,100m)로 간다. 역시 날씨가 좋지 않아서 이틀을 지체했다. 이튿날 베이스캠프에서 로우캠프(2,750m)까지 9km을 썰매를 끌며 등반하고 하루를 더 머물렀다. 

다음날 로우캠프에서 하이캠프(3,700m)까지 거리 3km 고도 1,000m을 올리니 고소를 느끼게 된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바람도 강하게 불어댄다. 도착 후 바로 다음날 정상으로 올라갈 준비를 했건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하루를 더 대기하고 1월2일 오후 3시40분 하이캠프에서 정상(4,897m)까지 14km 등반에 성공, 드디어 남극 대륙 최고봉 정상에 올라섰다. 마지막 캠프를 출발한지 7시간 만에 영하 40℃의 정상을 등정한 것이다. 


 빈슨매시프는 매우 추웠다. 웬만한 산들은 8,000m 정상이라 할지라도 기온이 영하 20~30℃에 그치지만, 이곳에선 평균기온일 뿐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 때는 기온이 영하 40℃ 가까이 떨어지고, 바람은 그치지 않고 연이어 불어댄다. 

남극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화장실 가는 것이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야외 ‘푸세식’이다. 소변은 막대기로 표시된 곳에 남녀 구별 없이 추위를 참아가며 볼일을 봐야 하고, 대변은 또 이동해서 소변과는 따로 처리해야 한다. 우주인 이소연씨도 우주선에서 대소변을 보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했는데, 그 기분을 알 것 같다. 

식량은 현지에서 지급한 식량을 그대로 먹었다. 원래 내 스타일대로라면 고추장이나 된장 김치 할 것 없이 담고 챙기기에 바쁘지만, 현지에서 지급하는 식량으로 먹어도 별 불편함은 없었다. 물론 추위 때문에 빵은 차고 딱딱했지만, 연어의 경우는 날것으로도 먹어도 맛이 괜찮았다. 패트리어트힐에서의 음식은 주방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거의 호텔 수준이었다. 수송기에서 바로 음식을 내려서 신선하고, 조리하는 여건이 좋아서일 것이다. 

빈슨매시프가 특별한 위험이나 어려움은 없었지만, 날씨 때문에 등반과 하산에서 애를 먹었다. 남극은 지각변동에 의해 융기한 곳으로 흙을 볼 수가 없다. 짙푸른 색을 띠고 새하얀 눈과 시커먼 바위로 뒤덮인 곳. 이것이 남극에 대한 기억이다. 


빈슨매시프는 남극대륙의 최고봉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또한 누구나 가기 힘든 희귀성이 매력이다. 이번 등반도 함께 한 정후식(광주일보 사회부 기자) 대원의 많은 도움이 있었기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또한 사진과 캠코더로 남극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담아올 수 있었다. 

등정 이후 기상악화로 인해 등반일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빈스매시프에서 패트리어트힐을 거쳐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하기까지 예상보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겨우 도착한 푼타아레나스에서 항공권이 없어 새벽부터 좌석이 나기를 기다렸다. 1월 말까지 표가 매진된 상황이었는데, 만약 여행사를 통해서 빠져나오려 했다면 더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을 것이다. 공항에서 끈질기게 기다린 덕분에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지난 2일 오후 3시20분(한국시각 3일 새벽 3시40분) 남극대륙 최고봉 빈슨 매시프(Vinson Massif·4,897m) 정상으로 이어지는 칼날 릿지에 한 사나이가 올라섰다. 바위와 얼음 위에 분설이 덮여 아슬아슬하게 형성된 설릉은 가풀막지게 꼭대기를 향해 뻗어가고 있었다. 

지축마저 뒤흔들 듯 쉼 없이 블리자드(눈을 동반한 강한 폭풍설)가 불어댔지만 그는 두 발로만 균형을 잡으며 성큼성큼 릿지를 올라섰다. 양 손이 없는 탓에 다른 등반가들처럼 피켈이나 자일에 의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툼한 우모 장갑 속에는 열 손가락이 모두 잘려 나간 뭉툭한 손목이 감춰져 있었다. 

날카로운 크램폰(등산화 밑에 착용하는 톱니 모양의 등산용구)으로 빙설 벽을 힘차게 찍으며 걷기를 20여분.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었다. 마침내 정상에 다다른 것이다. 

대륙의 용마루는 넓지 않았다. 두 사람이 겨우 발을 디딜 수 있는, 한 평 남짓한 공간은 깎아지른 눈 처마로 이어지더니 빙하바닥을 향해 급전직하로 내달았다. 시야를 가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동쪽으로 정상 3형제봉인 서브림 피크(4,865m), 코벳 피크(4,822m)가 어깨를 마주하고, 북쪽 건너편엔 마운트 신(4,660m)이 특유의 호리병 자태를 뽐내며 우뚝 서 있었다. 

산등성마루 연봉들에 가려 아래쪽 캠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정상을 밟는 순간 그의 눈가에는 어렴풋이 물기가 스쳤다. 각 대륙 최고봉 등반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매킨리에서의 조난사고, 몸의 일부가 될 때까지 되풀이했던 재활훈련, 원정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나날들, 장비와 식량 개선을 위해 무릅썼던 숱한 위험의 순간들. 거듭된 시련과 고난에도 넉넉한 웃음으로 버텨왔던 그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소리 내어 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드디어 세븐 서미트(Seven Summits)를 끝냈습니다. 그동안 도와주신 여러분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짧은 소감에 이어 함께 간 대원, 가이드와 포옹을 나눴다. 감격의 순간도 잠시. 장갑을 벗은 채 후원 기관 및 업체들의 깃발을 차례로 들고 사진을 촬영하는 동안 그의 손목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영하 30도에 육박하는 추위와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초속 30m의 강풍은 이제 그만 내려가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빈슨 매시프 등반을 위해 2년 동안 준비해왔건만 정상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단 15분에 불과했다. 


‘2008 남극대륙 빈슨 매시프 원정대’ 김홍빈(45) 대장. 그는 이렇게 세계 7대륙 최고봉 도전을 마무리했다. 산이 좋아,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등산이기에 도전했지만 어느새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7대륙 최고봉 완등은 양 손이 없는 중증 장애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다. 국내에선 몸이 온전한 산악인까지 다 합쳐도 다섯 번째다. 작심한다고 해서 아무나 이룰 수 있는 꿈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산 도중 만난 스페인과 러시아 등 각 국 원정 대원들 저마다 긴 포옹으로 그의 등정을 축하했다. 손가락을 모두 잃는 아픔에도 절망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인간 승리를 이뤄낸 데 대한 경의의 표시였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구랍 31일 눈보라 속에 하이 캠프(3,700m)에 오른 원정대는 다음날인 새해 첫 날 정상에 설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남극의 날씨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강풍과 상승기류가 몰고 온 자욱한 가스가 캠프 사이트를 온종일 뒤덮고 있었다. 블리자드는 한번 불기 시작하면 2∼3일은 계속되는 특성상 그 다음날도 장담할 수 없었다. 기상 예보도 우리 편은 아니었다. 

언제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2일 아침 정상 공격을 결정했다. 오전 7시30분 정상 연봉을 향해 길게 뻗어있는 설원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이 캠프에서 정상까지는 고도차가 1,200m 가까이 나기 때문에 당일 왕복은 벅차다. 서둘러야 했다. 

빈슨의 체감 고도는 위도 상으로 볼 때 실제보다 1,000m 이상 높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대원들은 고소에 제대로 적응할 기회조차 없었다. 더욱이 원정대는 남극에 도착한 이후 철저히 빵과 살라미 등 현지 식으로만 끼니를 해결했다. ‘최소 장비, 최소 식량’ 원칙에 따라 쌀과 고추장 등 한국 음식은 일체 가져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완만하게 펼쳐진 설원을 2시간쯤 오르자 록 밴드(암벽을 가로지르는 띠 모양의 가고 긴 돌출 부위)가 나타났다. 공격 루트는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지대를 피해 신(Shinn)봉과 정상 연봉 사이 오른쪽 안부를 향해 설정됐다. 30∼40도 경사의 오르막은 끝이 없는 듯 지루하게 이어졌다. 설상가상 바람도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스키 고글에 바라클라바(Balaclava·눈만 내놓은 채 목까지 내려오도록 만든 복면 형태의 모자)까지 착용했지만 내쉬는 숨은 그 즉시 얼음이 되어 얼굴에 달라붙었다.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지고 내딛는 걸음도 무거워졌다. 체력도 급속히 소진되는 듯 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등정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멈출 수는 없었다. 강풍 때문에 고개를 제대로 들지도 못한 채 50보, 100보를 세어가며 걷기를 7시간. 마침내 정상 능선이 눈앞에 나타났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김 대장은 힘이 솟는 듯 했다. 이내 발걸음이 빨라졌다. 평소 닦아온 암벽·빙벽 기술과 극한 지대에 도사린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거봉 도전을 계속해온 경험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의 초인적인 의지에 빈슨의 여신도 가슴을 활짝 열고 정수리 위로 그를 초대했다. 

돌이켜보면 7대륙 최고봉을 넘어서기 까지는 지역 산악계 선후배들의 도움이 컸다. 원정을 꾸릴 때마다 지원을 아끼지 않은 선배들, 등반 때마다 ‘아름다운 동행’으로 기꺼이 그의 손이 되어주거나 장비를 손가락 없는 손에 꼭 맞게 개조해준 동료와 후배도 있었다. 

김 대장은 “등반이 힘들어 뒤를 돌아보게 될 때면 그동안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리며 용기를 낸다.”고 했다. 7대륙 최고봉 완등은 이처럼 그를 격려하고 도와준 사람들의 기대에 대한 보답이기도 했다. 


이번 원정을 통해 그는 ‘잃어버린 손가락’을 되찾았다. 

‘조금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희망의 메시지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 것이다. 

빈슨을 내려오는 김 대장의 마음은 벌써 다음 목표인 안나푸르나와 다울라기리, K2 등 히말라야 8,000m급 거봉들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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